[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본 콘텐츠는 2024년 ‘Commons(공유지)’라는 주제로 진행된 ‘커넥티드 위크 : 열린학교’ 렉쳐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시대적 담론들을 영상과 글을 통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열린학교는 경계를 허물고 학생, 현업 종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영감을 충전해 갈 수 있는 소규모 그룹 렉쳐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어떤 담론들과 이야기들이 나누어졌는지 확인해보세요. |
| 세션 2_예술과 커먼스, 가능한 미래
예술은 왜 커먼스,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고민해야 하는 걸까요? 또 실천적인 고민들과 연결된 예술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과 함께 열린학교의 두번째 세션은 ‘예술과 커먼스, 가능한 미래’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의 연사로는 네덜란드의 예술 인스티튜트인 CASCO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최빛나 큐레이터, 그리고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설립하고 현재는 인컬쳐컨설팅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 컨설팅을 하고 있는 서지혜 대표가 함께 해주셨는데요.
우선 최빛나 큐레이터는 커먼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술 큐레이션을 해온 이력들을 소개하면서 이제껏 참여한 활동과 작업들의 예시를 통해, 커먼스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졌고 왜 중요한지, 예술은 다른 삶의 실천을 하기 위해서 어떤 역할과 고민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 속에서 서지혜 대표는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이자 운동인 ‘엘시스테마’를 접한 이후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실천을 왜 예술적 삶의 화두로 삼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예술이 제시할 수 있는 대항적 관점과 실천을 ‘커먼스’라는 아이디어를 매개로 살펴봅시다.
| 탈배움과 알로하, 커먼스를 위한 인식
‘탈배움’은 네덜란드 아티스트인 아네트 크라우스의 예술작업 <Site for Unlearning>을 통해 최빛나 큐레이터가 영감을 얻은 중요한 인식론적 방법입니다. 탈배움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습관 내지는 습속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시계적 시간, 선형적인 제도적 시간에 맞춰서 형성된 우리의 인식을 ‘탈배움’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적 시간성에 맞춘 세상이 아닌 어떤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최빛나 큐레이터는 생산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바쁨을 탈배우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일과 일상의 중심에 생산성을 두는 관념을 변화시키는 일은 단지 그 반대급부를 목표로 향해 가는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우리가 이미 가진 것들을 비워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탈배움의 생각을 CASCO의 단체 차원에서 직접 실천한 사례로는 ‘청소하기’가 있습니다. 재생산 영역의 노동은 전통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 부차적인 영역으로 취급 받아 왔죠. CASCO에서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은 어느 순간 청소라는 업무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편중되어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공동체 내부의 가부장제를 서로 인식하고 바꿔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청소를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 동안 함께 하는 것을 공동체적 예술적 작업의 일환이자 활동으로 정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커먼스라는 공동체적 작업은 어떤 범위 속에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 걸까요? 최빛나 큐레이터에 따르면, 우선 커먼스는 ‘하고 있는/해나가는’의 취지에서 ‘커머닝’의 의미에 가까우면서, 이분법적 사고체계를 해체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커먼스를 거버넌스적 의미의 공동체나 일차적인 번역어인 공유지의 의미보다는 국가의 의미를 넘어서 확장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때 “나는 커먼스의 이름으로 너를 사랑한다”라는 하와이 원주민 운동의 표어를 떠올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여기서 핵심적인 키워드인 ‘사랑’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나를 존재하도록 하는 더 큰 관계망이 있다는 인식 속에서 가능한 비개인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즉 존재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이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으로부터 가능한 감정인 것이죠. 최빛나 큐레이터는 이를 비개인적인 유대감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와이 원주민 운동은 휴양지로서의 하와이라는 재현, 식민주의적인 이해와 접근에 대항해 하와이의 전통적인 세계인식이 깃들어있는 인사말 ‘알로하’를 재전유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를 이해하고, 타자의 존재를 사랑한다는 행위는 그 존재의 위치와 정체성을 고려하는 비개인적인 유대감으로부터 가능한 것이죠. 탈배움과 알로하라는 관점 속에서 커먼스의 인식론은 어떤 예술적 실험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예술적 사유의 밑바탕이 될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 예술적 실천을 통해 연결하기
음악을 매개로 해 사회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의 사례를 접한 것을 중요한 삶의 계기로 언급합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이러한 무상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한 이후 저소득층 학생들을 중심으로 큰 사회적 변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왜 이러한 예술교육이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서지혜 대표는 이런 음악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지 음악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서 함께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 어린 태도로 음악을 대하는지를 습득하게 해줍니다. 결과적으로 경쟁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들을 배우는 기회를 오케스트라 활동이 만들어주는 것이죠.
서지혜 대표는 유명한 예술 교육 모델인 ‘엘시스테마’를 알게 된 계기로, 다양한 사회참여예술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해요. 이러한 모델을 적용시켜서 직접 다양한 예술 활동 및 교육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예술교육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와 예술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런 활동들이 실천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이러한 사회참여적 예술을 지속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고민들의 과정에서 세계예술교육실천가협력단체를 만나 예술교육에 대한 생각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게 되었고, 연대를 통해서 실천적 예술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술교육자들의 포럼을 조직하고, 첫번째 주제를 탈학습, 탈배움이라는 의미에서 ‘Unlearning’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배워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존의 삶의 규범과 방식들을 ‘탈학습’ 함으로써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술을 통해 다른 감각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집중하는 예술가들이 만나고 모일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점이 실천적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예술가의 윤리적인 태도 역시 언급했는데요. 예술이 사회를 바꾸고, 사회 속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은 윤리적인 고민을 포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참여적 예술이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온 시각예술의 관점들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음악 분야에 적용시키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서지혜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 어떻게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영향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와 활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SEM네트워크(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는데요. 음악을 통해서 사회변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음악 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힘과 가능성을 고민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음악의 기능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결국 서지혜 대표가 국내외 네트워크와 협력단체들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참여하는 이유는, 이러한 장들을 통해서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연대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세션을 통해서 우리는 ‘미래’와 연결된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혹은 촉발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조명해보았고, 이를 탈배움이라는 인식적 도구나 연대의 가치를 통해서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기존의 사회적 체계를 변환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예술이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모색할 수 있다는 생각을 통해서, 미래의 사회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 글 김지안 (영상원 영상이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