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를 통해 중심에 질문 던지기

‘탈중앙화’를 통해 중심에 질문 던지기

[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본 콘텐츠는 2024년 ‘Commons(공유지)’라는 주제로 진행된 ‘커넥티드 위크 : 열린학교’ 렉쳐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시대적 담론들을 영상과 글을 통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열린학교는 경계를 허물고 학생, 협업 종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영감을 충전해 갈 수 있는 소규모 그룹 렉쳐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어떤 담론들과 이야기들이 나누어졌는지 확인해보세요.

| 세션 3_예술활동의 탈중앙화 

예술활동의 탈중앙화는 왜 필요하고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요? 그보다 먼저 ‘예술활동의 탈중앙화’에서 ‘중앙’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번째 세션의 공통적인 질문은 예술 작업에 있어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면서 대안적인 활동을 만드는 사례들, 혹은 그러한 예술 작업사례들을 통해 탈중앙화에 대한 상상을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적 실천들 내의 탈식민주의라는 비판적 관점을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과연 지금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예술이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고자 하는 지일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서 예술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고 결부되어있는지를 이해한다면 동시대 예술들과 예술제도가 형성하는 문제점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기서 소개되는 사례들은 이러한 탈중앙화에 대한 고민 속에서 예술활동의 다른 중심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최태윤 작가는 탈식민, 탈물질, 시적 연산 등 다양한 개념과 예술적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작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특히 그는 사회참여적 예술에 있어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포에버 갤러리>라는 예술공간을 마련한 것도 예술을 매개로 예술가들, 관객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다른 관점들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습니다.

두번째 강연자인 루시 수터(Lucy Soutter) 교수는 코로나 시기에 시작하게 된, 글로벌한 사진사 연구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여기서 만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학생/사진가들 간의 문화적 언어적 위계 문제와 더불어 그것을 넘어서고자 했던 경험이자 도구로써의 문화번역의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 작지만 중요한 연결점들 

최태윤 작가는 시, 기술, 사회 그리고 인간관계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작가로 한국과 미국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중요한 방법론이기도 한 ‘시적 연산’은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작가가 예술적 표현이자 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인데요. 기술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면서, 그가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질문들은 탈물질, 탈식민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며 결국 예술은 사회참여적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작품은 <American Progress>라는 제목의 근대 미국 회화인데요. 

American Progress, John Gast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표상으로서 여신의 모습을 한 백인 여성의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또 그림을 잘 살펴보면,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케 하는 여성이 마을에 설치된 전선줄을 쥐고 있죠. 즉 당대의 회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을 통해서 사회의 ‘발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져왔는지, 혹은 기술적 발전과 연관되었다고 사람들이 믿는지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민주의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잔존해있습니다. 두 번째 루시 수터 교수님의 강연에서 식민주의가 1세계와 3세계 간의 이분법 속에서 주로 설명되는 반면, 최태윤 작가는 아시아의 식민주의와 같은 현대적인 문제점들을 함께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콩고의 코발트 채굴이 2차 전지의 원료 산업을 통해 어떻게 북반구의 선진국들(global north)과 남반구의 착취 관계를 만들어내는지, 또 원료들이 채굴되고 가공되어 ‘선진국’의 발전된 사회에서 쓰임을 다한 뒤 다시 폐기 작업을 위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로 회귀하게 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태윤 작가는 이러한 모순과 한계들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서 현대미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기반으로 지역적인 네트워크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역시 그가 시도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는 현대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우리에게 형성된 관념의 뿌리를 질문하고 드러냄으로써 다른 방식의 연결을 상상하는 것이 현대미술을 포함한 예술이 탈중앙화를 고민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 최태윤 작가는 모두를 위한 것은 없다고, 모두와 함께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사회운동이나 혁신은 작지만 중요한 연결점들에서 나온다며 그렇게 생각했을 때 손에 잡히는 예술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집니다. 

| 이분법을 해체하는 지역적 네트워크 만들기 

루시 수터(Lucy Soutter) 교수는 사진작가이자 연구자로 영국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최근에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던 ‘글로벌 포토그래피 네트워크’의 활동을 주로 소개했습니다. 국제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주변적인 목소리를 담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 그 방법으로써 어떻게 우리는 중심이 아닌 주변의 시선으로 세계의 규범들을 질문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포토그래피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세계의 다양한 예술적, 사진적 실천들을 담기 위해서 먼저 중심 대 주변부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요. 학술 및 예술 담론들이 서구 중심적으로 구성되고 순환되는 현 체계 안에서 벗어나서 좀 더 다양한 작업들을 담고자 했고,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의 배경에는 사진학이라는 학제가 영국을 중심으로, 크게는 1세계인 서구권 안에서 발전되어왔다는 점에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점에서 3세계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사진 미학들은 이 ‘중심’이라고 칭해지는 서구의 기준으로 재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글로벌 포토그래피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심과 주변의 관계로 이분화된 사진 예술의 장을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죠. 

수터 교수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의 핵심적인 방법은 바로 어떻게 우리가 초국가적인 대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강연에서 지적했듯이 참여자들은 초국가적인 대화를 주고받기 위해서 모였지만, (많은 비영어권 국가 출신 참여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바로 ‘글로벌’이라는 장이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같은 주제는 스피박이 말했던 문화번역(Translation as culture)이라는 개념으로 옮겨가는데요. 수터 교수에 따르면 한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에 대응되는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독특한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가 기반하고 있는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저 대응되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번역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그가 질문하듯이 “어떻게 동시대 사진 예술을 둘러싼 트랜스내셔널한 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자본주의적이고 서구적인 예술의 순환이 아니라, 지역적이고 공동적인 그래서 중심을 해체시킬 수 있는 지역적 네트워크와 실천들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번 세션을 통해서 두 명의 강연자가 ‘식민주의’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대안 등을 모색해왔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중심을 상상하고 그것에 기반한 체계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만, 탈중앙화라는 문제의식을 통해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가능성들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글  김지안 (영상원 영상이론과)

최태윤

미술작가, 교육자

Lucy Soutter

웨스트민스터대학교 사진예술 교수

윤하나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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