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현황들

관객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현황들

[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본 콘텐츠는 2024년 ‘Commons(공유지)’라는 주제로 진행된 ‘커넥티드 위크 : 열린학교’ 렉쳐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시대적 담론들을 영상과 글을 통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열린학교는 경계를 허물고 학생, 현업 종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영감을 충전해 갈 수 있는 소규모 그룹 렉쳐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어떤 담론들과 이야기들이 나누어졌는지 확인해보세요.

| 세션 5_ 공연예술의 관객접근성 기획 

지난 몇 년 간 관객과 공연 제작자 모두에게 극장의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극장 환경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관객들을 모두 포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열린학교의 다섯번째 세션은 공연예술에서 관객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기획하고 시도 하는 현장 전문가들을 초청해 실제 현황과 고민을 들어보는 자리로 구성됐습니다. 

첫번째로는 공연제작소 작작에서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다이어리>(이하 <키키>)를 함께 기획 및 운영한 홍지원 PD가 공연 기획자의 입장에서 관객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그는 창작 뮤지컬 <키키>를 기획하면서 관객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시도한 경험과 사례를 공유했는데요. 관객접근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이를 공연에 반영하기 위해서 모든 스탭과 배우진들이 장애를 이해하고 기존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져 있던 장벽들을 허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실제로 공연에 도입해 시도한 장치들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제작하고 창작하는 입장에서 들었던 현실적인 고민점들을 듣고, 한국의 현황들이 어떤 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영국 국립극장의 접근성 책임자인 데이비드 벨우드(David Bellwood)는 영국의 사례를 발표했는데요. 강의에서 재차 강조되었던 점은 영국이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애는 치료해야 할 대상이자 개인의 몫이라고 보는 의료적 관점과는 달리, 사회적 모델에서는 장애란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점에서 다수의 영국 극장이 오디오 디스크립션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실제 장애인 관객에게 관객접근성 보장을 위한 장치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더 나은 감각적 경험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영국 국립극장의 사례는 구체적인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세션이 공연을 제작하는데 있어 어떤 관점에서 장애를 보아야 하고,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창작뮤지컬에서 관객접근성 향상 시도해보기 

2023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인구는 약 264만명, 전체 인구의 5.1%에 달합니다. 이는 제도적으로 등록된 장애인에 한하며, 미등록 되거나 국가제도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는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 범주에 속하는 장애인 전부를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구통계 현황은 공연제작에 있어서 관객접근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관객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먼저 ‘장애’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고 할 때 마주하는 난점들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장애의 범주는 진단의 문제, 질병화와 명명, 고정관념, 젠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복잡한 논점들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실제로 접근성 장치들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입장에서, 유형에 따라 다양한 질적 특성들이 있는 장애인의 관객접근성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고민들은 장애를 보다 넓은 정의에서 생각해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장애의 유형에 따라서 고려해야할 사항이 매우 달라질 뿐더러, 적은 숫자이거나 인지하기 어려운 장애를 배제하지 않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공연 제작과정의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이런 노력을 지속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다양한 신체 및 정신 장애인들과 신경다양인 등을 위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장치들을 고려해 공연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관객이 오지 않으면 접근성 강화 사업을 지속하고 예산을 편성할 동력이 떨어지기도 하죠. 또 어떤 접근성 향상 장치를 선택하고 배치할 거냐 라는 판단의 문제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관객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이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노력의 무용함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접근성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떤 것부터 시도해야 하는지를 충실히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을 상기하는 일입니다. 

홍지원 PD는 작품 제작의 초기 단계부터 전 스탭들과 배우진 모두와 함께 이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고, 이 과정을 중요하게 설명합니다. 모두가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관객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키키>의 경우는 첫 기획회의 때부터 접근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안건으로 다루었고, 장애인식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을 통해서 각자가 장애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벽을 돌아보기도 하고, 공연을 통해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시도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내보는 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 어떤 것들을 시도할 수 있을까? 

<키키>가 관객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시도한 장치는 다양했는데요. 총 32회차 공연 중에서6회차를 접근성 보완 회차로 지정했고, 그 중 2회차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어통역을 제공했습니다. 수어통역 회차에서는 총 4명의 수어통역사가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서 배우들의 대사를 동시통역했고, 매표소에도 2명의 수어통역사를 배치했습니다. 또다른 2회차에서는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터치투어를 진행했는데요. 터치투어란 관객들이 무대 위 세트, 소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배우들의 동선을 가늠할 수 있도록 걸음 수를 세어보며 걷는 등 실제 무대를 느껴볼 수 있도록 공연 시작 전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말해요. 또한 조명 디자이너들이 하이라이트 조명과 같이 조명효과가 강해지는 공연 구간에서 온도나 어른거리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도록 미리 테스트를 진행했고, 주인공 ‘키키’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맡은 경우에 관객이 헷갈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미리 들려주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정신장애인을 위한 2회차 공연에서는 릴렉스드 퍼포먼스 공연을 진행했는데요. 이는 관객에게 편안한 공연관람을 지향하는 공연으로, 정신장애를 갖고 있거나 신경다양성을 가진 경우에 강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과도한 음향이나 조명을 지양하고, 공연 중 소리나 움직임을 내는 상황이나 입퇴장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신경다양인이 조금 더 편안하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공연에서 휠체어석 배치나 사전대본열람을 진행했습니다. 어려운 시도였지만, <키키>를 통해서 홍지원 PD는 모든 스탭과 배우가 의견을 제시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다양한 관객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더 많은 계기가 마련이 되면 이런 창작 문화가 정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영국의 관객접근성 보장 현황과 고민점들

데이비드 벨우드는 영국 국립극장의 ‘접근성 책임자’로, 공연구조나 제작, 관객 프로그램까지 국립극장 전반에 있어서 관객접근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국 국립극장은 관객접근성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으로 ‘이중감각원칙’을 세웠는데요. 이중감각 원칙이란, 관객들이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활용해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시각장애인이라면 청각과 촉각을 통해서 공연 정보와 내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겠죠. 벨우드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을 통해서 공연을 즐기는 만큼, 접근성 보장이 필요한 관객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과 세계 경험을 통해서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기에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번째로는 장애를 보는 관점의 문제를 언급했는데요.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을 비교하면서 왜 영국이 후자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장애를 의료적인 관점에서 보면, 장애는 ‘치료할 대상’이자 개인의 몫이 되지만,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서는 장애는 특정한 사람, 즉 비장애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반 시설과 제도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장애를 만든다고 정의합니다. 우리는 가령 신체장애인의 ‘이동권’을 예시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이 있다면, 그의 장애와 무관하게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겠지만 이런 사회 인프라가 정상인만을 고려해서 만들어진다면 이동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없죠. 그렇다면 신체장애인의 이동을 막는 건 장애 자체일까요 아니면 사회구조일까요? 이런 점에서 사회적 모델은 장애가 사회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앞서 말했듯이 영국에서는 사회적 모델이라는 관점에서 장애를 정의하며, 장애인이 공연을 관람하는데 따르는 장벽들을 없애고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요. 영국 내 극장의 84-85%는 오디오 디스크립션(description)을 제공하고, 81%는 자막 해설 공연을 제공하며,  87%는 릴렉스드 퍼포먼스 공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실제 마련된 보완 장치들이 어떤 관점과 방향 속에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예를 들어 오픈 캡션과 스마트 글라스는 유사한 장치지만 다른 방향성을 갖습니다. 오픈 캡션은 스크린을 통해서 공연에 대한 정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문자로 표기하는 방식이고, 스마트 글라스는 개인이 착용하면 안경 표면에 자막이 표기되는 방식입니다. 오픈 캡션은 공연을 감상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반면 스마트 글라스는 좀 더 개인에게 맞춰진 서비스입니다. 접근성 보완 장치를 어떤 방향으로, 다중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할 것이냐 아니면 장애인 개인에게 제공할 것이냐라는 차이는 장애의 범주를 다루는 관점과도 연관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논의는 예산집행과 결정과도 이어지는데요. 장애인 관객을 어떤 추가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부가적인 존재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들이 느끼는 ‘장벽’들을 모두를 위한 사회가 되기 위해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의 책임으로 볼 것이냐 라는 것은 관객접근성 문제를 다루는 또다른 중요한 원칙으로 보입니다. 

보다 관객접근성에 대한 담론과 제도적 장치들이 보편화된 영국 사례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실현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고민하고 시도해보고 있는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다이어리>의 사례를 들어보면서, 한국 사회 및 공연계가 변화해야 할 지점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만큼 지난 몇년간 변화한 인식도 짚어볼 수 있었던 세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공연예술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영역과 산업 속의 접근성 문제를 짚어보는 후속 논의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  글  김지안 (영상원 영상이론과)

홍지원

前 공연제작소 작작 PD

David Bellwood

영국 국립극장 접근성 총괄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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