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말을 들어보소~우리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멕이는데 각기 저정거리고 너부렁거리네 여 여 여 여루 상사디여~”
전라도 사투리로 소박하게 털어놓는 농사의 고단함이 중모리장단을 타고 구성지게 울려 퍼진다. 꽹과리, 징, 장구, 북이 오밀조밀 어우러지는 가락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그때 어디선가 유려하면서도 청아한 사운드가 살포시 소리를 얹는다. 은은한 듯 대범하게 사물놀이에 합세한 소프라노 색소폰이다. 전통 타악기와는 터치감이 살짝 다른 재즈드럼도 어느 샌가 수줍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윽고 저정거리는 춤꾼들의 몸짓이 더해지며 이색적인 하모니의 ‘농부가’가 비로소 완성된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진행됐던 ‘즉흥음악과 사자춤’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음악적 융합의 정수였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재즈 연주자이자 지난해 열린 제21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빛낸 야닉 리우(Yannick Rieu, 색소폰)와 필립 소아르(Philippe Soirat, 드럼)가 우리나라 전통연희를 이끌어갈 기대주들과 협연을 펼친 것. 해당 이벤트를 진두지휘했던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박인수 교수는 “예술적 융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표현방식”이라며 “태동부터 판이한 두 장르의 음악이 개성과 즉흥성이라는 내재적 가치를 아교삼아 한데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즉흥음악과 사자춤’ 실연 현장
| 재즈와 전통연희의 만남, 그토록 구성진 윤기라니
동서양을 대표하는 소리의 만남은 지난해 가을,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창작음악 교과 연계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같은 해 10월 20일에 열린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측과의 협력으로,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야닉 리우 심비오시스 퀄텟’(Yannick Rieu Symbiosis Quartet)과의 합동 무대를 성사시킨 것. 주최 측 관계자는 “야닉 리우 팀은 뛰어난 연주 실력은 물론, 독보적인 개성과 연출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재지스트”라고 평가했다.
우리 전통의 토대 위에서 재즈를 재해석하는 워크숍은 모두 세 가지 구성으로 이뤄졌다. 가장 먼저 합주다. 박인수 교수는 “야닉 리우의 연주곡 하나를 정하고 이를 학생들과 함께 분석해 본 후 우리의 가락과 장단을 얹는 작업을 진행했다”면서 “재즈를 전통연희의 관점으로 탐구한 후 함께 연주 호흡까지 맞춰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곡에 연희의 퍼포먼스가 더해진 구성도 있다. 익살과 해학이 담긴 몸짓으로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사자춤’의 등장이다. 흑인의 삶을 녹인 재즈와 우리 민중의 삶을 표현한 사자춤을 통해 서로 다른 역사‧문화 간의 대화가 이뤄지는 순간. 간드러지는 색소폰 선율에 맞춰 수북한 털 뭉치를 이리저리 흔드는 사자탈의 모습은 생소하지만 친근한 매력을 선사한다.
마지막 무대는 노래와 춤이 함께 한다. 우리 농악의 ‘농부가’를 국악과 재즈의 즉흥공연에 맞춰 부르며, 탈춤까지 어우러지는 자리. 마치 서로 다른 빛깔이 조우하면서 은은한 그라데이션을 자아내듯 윤기가 넘치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박 교수는 “색소포니스트와 전통 타악기, 그리고 사자춤과 탈출, 각기 다른 예술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예술을 완성한 자리”였다며 “학생들에게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귀한 배움과 체험의 시간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흥음악과 사자춤’의 참여멤버들의 단체사진
값진 경험의 기회인만큼, 학생들의 열정 또한 남달랐다. 원내에서 선착순으로 워크숍 참여 희망자를 모집했는데, 7명의 정원이 금세 마감됐다. 박 교수는 “새벽 두시부터 전화를 하는 학생까지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하고자 하는 친구들만 모였어요. 당연히 열심히 했고, 결과도 괜찮게 나왔죠. 사실 이런 융합 경험은 정말 중요해요.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 하는 활동이거든요. 이번 경험은 학생들이 앞으로 펼쳐나가야 할 예술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페이지가 될 겁니다.”(박인수 교수)
| ‘예술 융합’, 예술 그 이상의 예술을 위해
예술 교육의 관점에서 이번 워크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 예술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한예종의 부설기관으로 ‘예술 창작의 융합적 방법론’을 연구‧기획하는 아트콜라이더랩은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제작을 도맡으며 예술 장르 간 융합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야닉 리우는 물론, 전통예술원의 학생들 역시 뛰어난 기량의 아티스트들이지만, 그들이 하나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 소통부터 음악적 견해까지 맞춰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융합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재즈의 퍼즐 위에 자신에게 익숙한 가락과 춤사위를 맞추는 것에 애를 먹기도 했다. 가교 역할을 해준 건 김지혜 강사(연희과)였다. 한예종 전통예술원 출신으로 버클리 음악 대학에서 재즈 공부를 마친 하이브리드 예술가다. 박인수 교수는 “각각의 음악 장르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역사, 그리고 체계를 지닌다”면서 “여기에 연주하는 사람까지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기에, 장르 간 융합을 통해 이해와 존중의 힘이 더욱 길러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흥음악과 사자춤’의 연습 현장 모습
산적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융합은 미래 예술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다. 예술 장르, 그리고 예술가가 가진 유한성 때문이다. 이질적인 장르를 융합하는 작업은 예술가에게 매우 큰 창의성과 유연성을 요구한다. 이는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 초석이 되며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다. 박 교수는 “융합을 통해 자연스레 사고와 표현 방식의 확장을 체득하게 된다”면서 “이는 예술가 개인의 성장과 영감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전통예술의 관점에서도 융합은 필수불가결하다. 전통예술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생동감 있는 자산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문화권의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동시대의 예술은 더 이상 특정 문화권에 갇히지 않으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인수 교수는 “예술 융합은 예술가의 성장과 영감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박인수 교수가 아트콜라이더랩와 함께 창조적인 교육 방법론을 연구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특히 전통예술 분야에서는 더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많이 부딪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음악 장르 간도 그렇지만, 미술원, 음악원, 영상원 등 원과 원끼리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한예종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거라고 믿거든요. 무엇보다 전통예술의 창작 방법론이 더 명확해져야 해요. 그게 이뤄지면, 타 분야와 장르를 넘나드는 일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 글 최태욱 기자
관련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