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예술가들이여, 이제 이렇게 배웁시다”

“미래의 예술가들이여, 이제 이렇게 배웁시다”

[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단지 과거의 성과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에요오히려 출발점이죠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함께 상상하고 설계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우리의 새로운 비전인 열린학교를 통해서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장의 개회사는 2025 커넥티드 포럼 ‘커넥티드 캠퍼스에서 열린학교로’ 행사의 의미를 명징하게 밝힌다. 한예종이 예술 교육의 혁신을 위해 지난 5년 간 고민하며 펼쳐왔던 내용들을 나누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선포하는 자리. “보다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김 총장의 희망 섞인 독려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예술의 유연한 연결과 끝없는 확장을 위한 5년여의 시행착오. 그 속에서 발견한 가능성은 무엇이며, 새롭게 얻게 된 질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25 커넥티드 포럼 개회사에 나선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이날 행사에는 예술 및 예술 교육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석해 예술교육의 미래상을 조망했다.

| “미래의 예술가는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커넥티드 캠퍼스는 예술 교육의 혁신을 갈망하는 한예종의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다직접적인 계기는 소위 펜데믹’ 사태지만이는 촉매제에 불과하다도제식 교육의 폐해성과 중심의 학습 목표예산과 시간의 제약직업적 전망에 대한 불안 등 예술 교육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교내 예술적 자원의 융합이 미비하다는 내부의 고민 등은 이미 새로운 창작 및 교육 방안의 개발을 부추기고 있었다

중책을 떠맡은 곳은 교내 부설기관인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 예술 장르 간의 융합은 물론기술과 감성학교와 사회의 연결과 확장을 연구‧기획하는 아트콜라이더랩은 한예종의 미래를 구상하고 이를 실험하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2025 커넥티드 포럼’ 현장에서 만난 아트콜라이더랩의 멤버들

5년여의 시간 동안 프로젝트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핵심 키워드는 ‘전환’과 ‘융합’이다. 전환의 측면에서 선행된 작업은 인프라 구축. 미래 교육에 적합한 디지털‧온라인 환경 구축을 위해 교내 다양한 인프라가 속속 마련됐다. 음악원의 ‘레코딩 스튜디오’, 무용원의 ‘모션캡쳐 스튜디오’, 영상원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전통예술원의 ‘레코딩&스트리밍 스튜디오’, 미술원의 ‘디지털 창작 스튜디오’, 융합예술센터의 ‘AC-CAVE’, 그리고 도서관과 학생 식당, 이어령예술극장 등에 위치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월 등이 커넥티드 캠퍼스 사업으로 구축된 대표적인 디지털 인프라다.

한예종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월’은 어느새 학부모와 학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가는 ‘인증맛집’이 되었다.

해당 인프라들은 말 그대로 도전과 실험의 장이다. 학생 및 교수들이 전공 구분 없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결과에 집착할 필요 없이 창의적인 과정과 자유로운 융합을 펼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완벽한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그렇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죠. 학생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들러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구상이었거든요. 예술학도들이 온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되길 기대했습니다.”(김보형 아트콜라이더랩 연구원)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들은 이내 예술적 융합의 정신으로 채워졌다. 인프라를 확보한 이후, 아트콜라이더랩은 다양한 예술적 영감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교육 과정을 개발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이 꽃피는 사례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전통예술원 학생들이 디지털 영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창작연희실기실습’, 음악원과 첨단 게임 산업을 연결한 ‘게임음악 산업의 이해와 레코딩 콘텐츠 제작 시범 워크샵’, 가상 환경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창작 가능성을 소개한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데모데이’ 등 융합 예술의 초석을 다지는 활동들이 활발히 전개됐다. 아트콜라이더랩에서 교육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정순영 연구원은 “시작할 때는 분명히 각각의 원에서 출발했지만, 프로젝트가 무르익어 가면서 차츰 협업의 포인트가 생겨나더라”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와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들의 창ᆞ제작을 위한 생장점이 생겨난 게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재즈와 전통음악의 융합을 시도했던 ‘즉흥음악 및 사자춤’ 워크숍의 모습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학생들의 인식 변화다. 지속적인 인프라 구축과 이를 활용한 교육 과정이 꾸준히 열리면서 학생은 물론 교수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 아트콜라이더랩의 김보배 연구원은 “이번 포럼을 준비하면서 (커넥티드캠퍼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실험을 꾸준히 기획하고, 학생들의 접근 방식도 확대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포럼에서 만난 미래 교육

 

‘2025 커넥티드 포럼’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각기 다른 관점으로 예술교육의 미래상을 조망했다. 먼저 최나영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학생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연구원은 “교육의 관점이 대학이나 학과 단위에서 점점 학생 개인에게로 이동하는 추세”라며 “이를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맞춤형 추천 혹은 설계 제안을 하거나 공간 설계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민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학교라는 공간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이성민 큐레이터는 “미래의 학교는 배움의 공간을 넘어 관계와 네트워크 중심의 공간이 될 것”이라며 “학교가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생태계의 중심이 된다면 자연스레 여러 예술가들을 연결되는 융합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진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AI시대의 예술가의 고유성에 대해 소개했다. 이진준 교수는 “AI가 아무리 탁월해도 인간이 가진 시적 함축성, 몸의 기억, 사적 경험은 학습할 수 없다”면서 “예술가들이 기술을 도구로 삼지 않고 존중하는 단계에서 우리가 가진 유니크한 이 세 가지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희 계원예대 교수는 비평적 사유의 대상으로 기술을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김성희 교수는 “예술가로서 우리의 역할은 기술이 우리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그 변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2023년에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권병준 미디어아티스트는 자신의 로봇 작업을 소개하며 예술가들의 교감과 교류를 장려했다. 그는 “나는 로봇을 만들지만 음악가, 미술가, 영상 전문가 등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영감을 얻는다”면서 “이는 융합의 시대를 살아갈 미래 예술가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자세”라고 강조했다.

| 모든 예술가에게 ‘활짝’…열린학교에서 만나요.

이날 포럼의 개최는 커넥티드 캠퍼스의 고민과 실험이 일단락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예종이 꿈꾸는 미래 예술교육은 지금부터다. 커넥티드 캠퍼스의 의미있는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 나갈 ‘열린학교’가 바로 그 비전이다. 고정된 커리큘럼이나 단일한 창작 방식 같은 기존 교육의 틀을 훌훌 벗어던지고, 다양한 예술 주체들이 자유롭게 협업하고 교류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무대다.

긴 시간 동안 미래 예술 교육의 이상향을 고민했던 아트콜라이더랩 멤버들은 열린학교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정순영 연구원은 ‘과정’에 주목한다. 결과보다는 창작의 과정과 탐색의 깊이에 주목하는 예술교육 본연의 특성이 오롯이 구현되는 곳이기를 바란다. 정 연구원은 “실수나 실패도 예술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학습의 일부”라며 “성공과 실패가 나뉘지 않고, 다만 끊임없이 배움의 지점이 샘솟는 학교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열린학교’의 모습을 상상하는 아트콜라이더랩의 멤버들. 왼쪽부터 정순영 연구원, 김보형 연구원, 김보배 연구원

김보배 연구원은 자유분방함을 첫 손에 꼽는다. 예술학도들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제약과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는 것. 김보배 연구원은 “틀에 가두지 않는 다양한 실험과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 및 지원이 있다면,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 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형 연구원이 강조하는 것은 연결과 확장이다. 학생들이 전공과 원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를 확장하는 순간,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는 믿음에서다. 커넥티드 캠퍼스가 품었던 ‘융합’의 가치와 맞닿아 있는 부분. 열린학교가 수많은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지는 ‘만남의 장’이 되길 바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씬에서 오래 일했는데, 예술가와 스타트업이 참 비슷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도 그렇고, 팬이 있어야 빛이 난다는 점도 닮았죠.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네트워킹이거든요. 예술가 역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즉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린학교가 그런 분위기를 잘 만들어줘야겠죠?(웃음)”

/  글  최태욱 기자 

최나영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성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진준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센터 센터장

김성희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권병준

미디어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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