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지키며 대중 포용”…게임 음악 통해 엿본 미래향 음악교육의 힌트

“전통 지키며 대중 포용”…게임 음악 통해 엿본 미래향 음악교육의 힌트

[Issue]는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이 기획 및 운영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봐요. 흥미로운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으니까요. 이를 계기로 클래식 음악 분야의 예술 융합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정순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연구원)

지난해 11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음악원에서 3주간 진행됐던 ‘게임 음악 산업의 이해와 레코딩 콘텐츠 제작 시범 워크샵’은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타진해 본 시간이었다. 예술표현의 창의성과 확장성을 고민하는 교육자의 니즈와 보다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배움을 지향하는 학생들의 바람이 ‘게임 음악’이라는 주제를 통해 만난 것. 국내에서 창의‧융합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총출동하여 멘토링에 나선 것도 음악교육의 혁신을 도모키 위해서다. 해당 워크숍을 기획‧실행했던 한예종 융합예술센터의 정순영 연구원은 “클래식 음악이 과거로 회귀하는 특성을 갖는 장르이다 보니 디지털 전환과 융합에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순수예술과 대중문화를 잇는 매력적인 매개체인 게임 음악을 통해 전환과 융합, 그리고 미래교육에 대한 과제를 풀어보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임 음악 산업의 이해와 레코딩 콘텐츠 제작 시범 워크샵’에서 녹음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 예술과 문화 사이 그 어딘가…게임 음악의 독창적 가치

‘게임 음악 산업의 이해와 레코딩 콘텐츠 제작 시범 워크샵’은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교육 실험의 일환이다. 그런데 왜 하필 ‘게임 음악’일까? 이는 해당 플랫폼에 담긴 다양한 가치들에 기인한다. 가장 큰 특징은 상업적인 가치와 예술적인 가치가 공존한다는 점. 동시대의 게임 산업은 자타공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총아다. 실제로 영화와 음악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며,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추세다. 이토록 뜨거운 필드에서 몰입감과 상호작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게임 음악이다. 가장 상업적인 분야 같지만, 그 자체로 독창적인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받기도 한다. 실제로 콘서트 투어나 음반 발매 등을 통해 두터운 팬덤을 확보하고 있으며, 보다 실험적인 접근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전통과 미래를 잇는다는 점도 게임 음악이 가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게임 음악 작곡가들은 고전 음악의 형식과 기법을 즐겨 사용하며,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연주 역시 흔한 일이 됐다. 그와 동시에 AI, 메타버스, 빅데이터, VR‧AR 등의 하이엔드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실험적 음향과 사운드 스케이프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클래식 장인의 손끝으로 MZ로 대표되는 젊은 게임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전통과 미래를 꿰는 게임 음악만의 매력이다.

 게임 음악은 이미 독창적인 예술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게임 음악이 갖는 다양한 가치들을 두 글자로 함축하면 ‘융합’이다. 예술, 문화, 문학, 기술, 사회 등 동시대의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된 성취들과 자유롭게 융합하며, 이내 다양한 계층의 관객마저 융합하는 힘을 가진다. 예술 창작의 융합적 방법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한예종 ‘커넥티드 캠퍼스’ 사업(음악원 연계)에서 과감히 게임 음악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 ‘게임 좀 안다’는 창의적 예술가들, 멘토로 헤쳐모여!

‘게임 음악 산업의 이해와 레코딩 콘텐츠 제작 시범 워크샵’의 핵심은 게임과 음악을 두루 섭렵한 유수의 강사진이다. 게임 음악 시장과 창작 과정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요소. 이를 위해 국내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융합 예술의 대가들이 특별 강사로 참여했다. 게임 산업 전반에 대해 짚어본 첫 주차의 문을 연 건 유예근 ‘YK Music’ 대표. 유명 콩쿠르를 휩쓸었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수많은 게임, 애니메이션, 광고, 영화, 드라마,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바통을 이어받은 진솔 지휘자는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탁월한 재능을 뽐내고 있는 예술가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의 게임 음악 플랫폼 기업 ‘플래직(FLASIC)’을 이끌 정도로 이 분야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첫 주의 대미를 장식했던 김지윤 ‘펄어비스’ 오디오실장 역시 동‧서양의 음악은 물론, 게임 음악까지 섭렵한 융합 예술인이다. 지난해에는 전통 농악을 박진감 넘치는 게임 음악으로 승화시킨 공로로 게임사 최초로 국립국악원의 초청까지 받았다.

 워크숍 1주차 강사로 참여했던 진솔 지휘자

워크숍 2주차는 음악적인 깊이를 더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완벽하게 다루는 악기만 30종에 이른다는 멀티 악기 연주자 권병호 강사가 게임 음악 멀티 사운드 연주법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했고, ‘플래직’의 상주 작·편곡가로 리니지, 카트라이더, 모두의 마블 등 유명 게임 음악의 편곡작업에 참여했던 편도아 작곡가를 통해 게임 음악 작‧편곡법을 배우는 등 오롯이 음악적 요소에 집중했던 시간으로 채워졌다. 마지막 주차는 한예종 음악원 레코딩 스튜디오를 활용한 녹음 특강. 게임을 통해 귀에 익었던 음악들이 플래직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통해 연주되고 녹음되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워크숍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예술 융합을 기치로 하는 교육 기회였던 만큼, 수강생의 면면도 다채롭다. 국악 전공생이나 기악 전공생이 참여하는가 하면, 그룹사운드의 베이시스트나 심지어 성악가도 있었다. 정순영 연구원은 “한예종 교내는 물론 외부에도 오픈을 했던 덕분에 수강생 역시 융합이 이뤄졌다”면서 “열정이 확인된 수강생으로만 추린 만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워크숍 2주차에 음악 멀티 사운드 연주법 특강을 하고 있는 권병호(왼쪽) 강사

| 과거를 연주하며 미래를 비추는 음악 교육 필요

한예종의 디지털 전환과 예술 장르 간 융합을 연구하고 이를 창의적 교육 활동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아트콜라이더랩 입장에서 음악원은 마치 철옹성 같은 이미지였다. 과거와 가까워질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클래식 음악의 특성 때문이다. 장르 특유의 전통성과 형식미에 갇히다보면, 융합의 동기가 다소 무뎌질 수밖에 없는 것.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득달같이 접점을 찾아내는 미술원이나 영상원 등과 속도의 차이가 존재했던 이유다. 정순원 연구원은 “음악원이 가진 전통적 요소를 존중하면서 융합 예술 장르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속내를 밝혔다. 

정 연구원의 고민은 융합의 당위성을 전제한다. 그 자체로 완성도가 뛰어난 장르라고 해도, 언제까지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 표현 양식의 확장이나 새로운 세대의 포용이라는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연주자의 경제적인 비전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도 이는 필요한 과제다. 

“출강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요즘 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를 여쭤보니 대뜸 ‘주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우스갯소리이긴 한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먹고 사는’ 문제가 녹록치 않은 거죠. 융합을 통해 비즈니스적인 접근을 해보고 싶었어요. 첫 테마로 ‘게임 음악’을 선정한 것도 그래서고요.”(정순영 연구원)

 정순영(사진) 연구원은 “게임음악이 가진 융합적 가치와 그로 이해 얻을 수 있는 산업적인 메리트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음악계에선 음악 예술의 순수성에 다양한 가치를 덧입히며 흥미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활동이 한창이다. 대중문화와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클래식 공연이나 무용‧미디어아트‧문학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감상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활용한 오케스트라나 AI와 협업하는 작곡가도 융합의 좋은 사례다.


아트콜라이더랩의 융합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음악원이 보다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융합 실험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여, 의미있는 사례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계획. 궁극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기존 클래식 음악의 깊이와 감동마저 더욱 배가시켜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피아노 건반 열 두 개만 사용하더라도, 나머지 건반을 아예 못 치는 것과 여든 여덟 개 건반을 다 칠 수 있는데도 열 두 개만 치는 건 차이가 크잖아요.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고 이해할수록 표현의 풍부함은 훨씬 커질 거라는 얘기에요. 그게 바로 융합을 통해 얻게 되는 감동의 원천이고요.”(정순영 연구원)

/  글  최태욱 기자 

최진

톤마이스터, Sempre la musica 대표

진솔

플래직 대표이사/예술감독

유예근

YK Music 대표, 게임음악 작곡

김지윤

펄어비스 오디오 실장, 게임음악 작곡

권병호

국내 유일 멀티 악기 연주자

편도아

플래직 소속 작곡 및 편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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