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라면 ‘모범답안’ 말고 ‘비범답안’을 찾아야죠.”

“예술가라면 ‘모범답안’ 말고 ‘비범답안’을 찾아야죠.”

[People]은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과 함께 한 사람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결국 교육의 방향성 문제죠. 답이 정해져 있고 그길로만 치닫는 교육에선 창의력을 발휘할 재간이 없거든요. 협업 같은 것도 성가신 일로 치부되어 버리고요.”

아르동(본명: 남기륭) 작가의 목소리에는 확고함이 배어있었다. 배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를 교육 현장에서 하나둘 확인하며 단단해진 신념 덕분이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이자 대학 강단에 서는 교육자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창의적 교육 연구자’라고 먼저 밝히는 것도 교육 혁신에 대한 소명의식의 발로다. 지난 가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AC-CAVE’에서 진행됐던 ‘창의적 기술 스터디’는 교육에 관한 그의 신념이 물리적으로 오롯이 구현된 자리였다. 예술가들의 기술적 성숙과 교류를 위한 연구 모임을 표방하지만, 성숙도 교류도 재촉하지 않는 독특한 운영 방식이 특징. 정해진 주제가 없고 모범답안이 없으며, 가르치는 사람도 마땅히 없는 ‘3無 원칙’ 아래서 학생들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르동(사진) 창의적 교육 연구자

| 기술자이자 예술가, 그리고 교육 혁신가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아르동 작가의 주요 관심사는 사람이다. 다양한 뉴미디어 기술을 섭렵한 테크니션이지만, 그가 작업의 재료로 삼는 것은 늘 사회와 공동체다. 기계공학을 공부하는 공대생에서 예술 세계로 삶의 궤도를 바꾼 것도 기계 말고 사람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기획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기획 업무를 하면 할수록,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심이 더욱 커지더라고요. 그 지점이 바로 제 예술의 시작이자 끝인 것 같아요. 소통으로 완성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애용하는 이유도 그래서고요.”

소통과 수용을 강조하는 그의 예술 철학은 교육의 영역에서도 고스란히 계승된다. 늘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다 의미 있는 배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서 고정관념을 깨는 실험을 펼치기도 한다. 그가 스스로를 ‘교육 연구자’라고 칭하는 배경이다. 가장 가치있는 연구 자료는 그의 피교육 경험이다. 초중고와 대학, 한예종의 학‧석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마주했던 숱한 수업들이 기성 교육의 한계와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공했고, 체득으로 축적한 레퍼런스는 아르동 작가의 교육관을 점점 견고하게 만들어줬다. 

“대학까지 쭉 배우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한예종에 들어와선 콘셉트를 확 바꿔봤어요. 완벽히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되도록 구성한 거죠. 교내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죄다 참여했어요. 타 전공 수업도 거의 다 ‘찍먹’해봤죠.(웃음) 돌이켜보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 좋을지…그런 방향성을 조율하는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교육자로서 이제 4년차. 현재 한예종 멀티미디어 영상과와 무대미술과에서 후배들과 만나고 있는 아르동 작가는 지난해 의미있는 한 발을 내딛었다. 자신의 교육 철학을 오롯이 투영한 워크숍 강좌를 통해 도제식으로 주입하거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것. 그 실험의 자리가 바로 한예종 아트콜라이더랩과 함께 한 ‘창의적 기술 스터디’다. 아르동 작가는 “배우는 커뮤니티라는 개념을 예술 교육과 결합시킨 시도”라며 “교육을 주관했던 저와 교육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다 같이 성장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아르동 작가(오른쪽)

| “진짜 영어를 하고 싶으면 영어학원 말고 미국생활 해야죠.”

‘창의적 기술 스터디’는 한예종의 비교과 워크숍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의 기술적 성숙과 교류를 목표로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마지막 회 차에 각자의 성과를 공유하는 단순한 구조. 가장 먼저 방점이 찍히는 건 ‘기술’이다. 동시대는 기술의 확장이 표현의 확장을 의미할 정도로 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돈독한 시기. 예술가들이 AI를 위시한 다양한 뉴미디어 기술을 체득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아르동 작가는 “기술의 활용성에 비해 이와 관련된 수업은 양적, 질적인 면에서 모두 부족한 편”이라며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의도를 가진 워크숍을 시험 삼아 몇 차례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려는 창작자를 위한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수업 배경만 들으면, 교육자의 역할 비중이 무겁게 느껴질 법도 하다. 공대 출신에 지난 10년 간 미디어 아트 관련 기술을 연마했으며, 현재도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르동 작가가 주관하는 수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제 워크숍 현장은 180도 다르다. 아르동 작가는 일종의 퍼실리테이터로만 참여할 뿐 교육이나 평가를 일절 하지 않는다. 심지어 미션도 딱히 없고, 결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도 느슨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저 서로 컴퓨터 화면 보여주는 정도”란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기술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 문자 그대로 ‘스터디 그룹’ 같은 형태로, 이 지점이 바로 이 워크숍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별점이다.

“우리 머릿속의 공부는 단순 암기나 반복 연습 같은 이미지잖아요. ‘창의’나 ‘예술’과는 거리가 참 멀죠. 이 모임에서 하는 건 차라리 ‘습득’에 가까워요. 마치 미국가서 오래 있으면 자연히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처럼, 기술의 네이티브 사이에 최대한 노출시키면서 자연스레 기술적 사고를 습득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원리죠.” 

창의적 기술 스터디 현장 모습

이렇게 느슨한 듯 진행에도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답은 역시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워크숍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냈다”고 평한다. 캐주얼한 게임을 직접 만들어 낸 참가자부터 본인의 기존 작업에 AI를 적용한 사례까지, 성취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참가자들이 워크숍이 갖는 교육의 방향성을 공감하고, 교육에 대한 관점마저 재고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도 느껴져요. 정답을 알려주는 수업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이내 이리저리 시도해보게 되죠. 당연히 실패도 하고 어려움도 겪는데, 결국 성공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것도 저조차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요. 가장 바람직한 과정이자 결과죠.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 소위 ‘입시교육’의 사고방식에서 점점 빠져나오게 될 겁니다. 그게 교육의 혁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요.”

 창의적 기술 스터디 현장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는 참가자

| 정답보단 가능성으로, 경쟁 말고 화합으로

아르동 작가가 주창하는 ‘창의적 교육’은 예술 분야에서 축적한 특별한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작가는 “예술 교육 분야가 지니고 있는 한계와 과제가 교육 전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교육의 발전상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문제, 이를 테면 ‘입시 위주’ ‘주입식’, ‘경쟁 일변도’ ‘결과 만능주의’ 등의 관념에서 예술 교육도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얘기다.

“성인이 되어 예술을 한다 해도, 결국 초‧중‧고를 거치며 경험한 학습의 관성에 따르게 되기 쉽잖아요? 정답만 쫒으려고 하는 경향이 예술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죠. 협업이 여의치 않은 것도 당연해요. 경쟁 효율성 측면에선 그보다 거추장스러운 게 또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아르동 작가는 효율보다는 자율에서 희망을 찾는다. 예술, 그리고 예술 교육이 갖는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간절해지는 목표다. 아르동 작가는 “결과와 경쟁을 앞세우는 교육은 마치 모두를 유명 피아니스트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공허한 방식”이라며 “예술 피라미드의 꼭대기 말고, 중간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적 형태의 교육이 양적으로 늘어나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르동 작가가 결과보다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경쟁 대신 어울림을 유도하는 교육에 매진하는 것도 예술이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다양성과 풍성함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반짝반짝한 사람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각자가 더욱 개성 있게 빛날 수 있을 때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예술 역시 더욱 찬란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릴 때부터 밴드 음악하는 가족들 따라다니면서 같이 행사 뛰던 꼬마가 있었어요. 공연을 많이 다니니까 사람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열광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죠. 그저 그렇게 음악을 배운 거예요. 치열한 경쟁을 하거나, 무한 반복적인 연습을 한 게 아니라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중 하나인 한 명인 브루노마스 얘기입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얘기이기도 하고요.”

/  글  최태욱 기자 

아르동

미디어 아티스트, 창의적 교육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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