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가들이여, 옛 것 말고 네 것에 심취하라.”

“전통예술가들이여, 옛 것 말고 네 것에 심취하라.”

[People]은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과 함께 한 사람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한예종 나왔다고 하면 여기저기 연주하러 많이 다녀요. ‘이걸로도 먹고 살 수 있겠는데?’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30대 초반만 되도 상황이 확 바뀝니다. 불러주는 이가 드문드문해지는 거예요. 그 때서야 깨닫게 되죠. 결국 예술가에겐 ‘자기 것’이 꼭 필요하다는 걸 말예요.”

박인수(43)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전통예술인으로서 우리의 소리를 온전히 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의 예술을 탐구하고 창작하며 표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박인수 교수는 “살풀이의 이매방 선생이나 태평무의 강선영 선생 같은 분들이 명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 덕분”이라며 “살풀이나 태평무를 아무리 잘 연행한다 한들, 저분들처럼 기억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배이자 스승,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 동료의 노파심은 그의 가르침 곳곳에 녹아있다. 그닥 특출날 것 없는 학생들의 과제물을 ‘작품’이라고 치켜세우며 학생들의 창작열을 독려하고, 저작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창작자의 마인드셋을 다진다. 지난해 2학기, 한예종 커넥티드캠퍼스 사업을 통해 진행했던 ‘창작음악 음원등록 및 발매실무’ 수업 역시 학생들이 자기 예술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환이었다. 자신만의 악상이 최종소비재로 완성되어 가는 동안, 그들 역시 진짜 예술가로 영글어 간다.

박인수(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 북치고 장구치는 만능예술인

박인수 교수는 말 그대로 예인(藝人)이다. 한예종 연희과(석‧박사)를 졸업한 만큼,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연희’의 요소들에 모두 능하다. 그중에서도 주 종목은 ‘탈춤’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이수자로서, 30대에 한예종의 교수로 입성할 만큼 발군이다. 

“탈춤은 1998년에 첫 전공이 생겼어요. 굿, 무속, 탈춤, 풍물 중에서 가장 늦죠. 그만큼 연구가 덜 된 분야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가장 끌리더라고요. 연극 같기도 무용 같기도, 때론 노래 같기도 한 게 바로 탈춤이거든요. 그야말로 종합예술이죠.(웃음)”

 

전통예술의 권위자로서 전통에 대한 깊은 고찰과 올곧은 계승에 매진하면서도, 예술가로서의 본질은 굳게 고수한다. 바로 창작과 표현이다. 겸허하고 성실하게 전통을 배우되, 이는 결국 자기표현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지난 2021년 박 교수가 창작한 탈춤공연 ‘섞어잽이’는 그의 예술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무대다. 여느 탈춤이 고정된 춤사위가 반복되는 양상을 가진데 비해, 해당 작품은 약속된 동작과 즉흥적인 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 공연의 영감을 준 이는 다름 아닌 BTS. 박 교수는 “BTS가 ‘다이너마이트’ 무대에서 자유롭게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순간, BTS 본인들만의 예술이 보이더라”면서 “그 즉흥성이야 말로 온전히 예술가 자신의 것이란 생각이 들어 고정화된 탈춤의 즉흥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탈춤을 기획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박인수 교수는 “예술가의 본질은 창작과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0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해온 ‘설장구’(장구악기로만 따로 연주하는 놀이) 만들기 프로젝트 역시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활동이다. 사물놀이가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학생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착안한 프로젝트. 박 교수는 “학생들이 만드는 곡은 대부분 재기발랄하면서도 흥겹다”면서 “연주도 전통곡들보다 쉽기 때문에 전통예술의 저변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 “여러분이 만든 걸 세상에선 ‘작품’이라고 불러요.”

학생들의 창작곡은 박 교수를 매료시켰다. 아직 학생인 만큼, 곡의 수준이 월등하거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이상의 신선함이 있었다. 재미있거나 센스 넘치는 포인트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왔고, 기존에 없었던 타법을 선보이는 실험정신도 엿보였다. 문제는 학생들이 교수만큼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하더라고요.(웃음) 좋은 곡들이 많아서 여기저기 공연하러 다닐 줄 알았는데, 이내 잊혔어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지, 새로 창작하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 건지…본인 곡 귀한 걸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학생들의 곡이 휘발되는 게 아쉬웠던 박 교수는 급기야 앨범 제작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마련된 특별한 자리가 바로 ‘창작음악 음원등록 및 발매실무’ 수업이다. 이전에 창작한 곡들을 대상으로 스튜디오에서 음원을 녹음하고, 이를 직접 등록하고 발매해보는 과정.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일대일 멘토링 세션까지 더해져 저작권과 유통과정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해당 수업을 통해 노리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자신의 예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의 설파. 박 교수는 “한예종 학생들은 재학 시절부터 공연을 굉장히 많이 다니기 때문에 연습하고 공연하는 것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면서 “따로 시간을 할애해서 진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마인드셋과 동기부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예술의 저변 확대는 보다 대승적인 목표다. 앞서 언급했듯, 사물놀이의 곡수는 웃다리 사물놀이, 영남 사물놀이, 호남 우도 사물놀이 등 대여섯 개에 불과하다. 장구 곡 역시 마찬가지. 비슷한 곡만 가르치고, 비슷한 곡만 연습한다는 의미다. 신명이 기치인 우리 가락임에도 자칫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박 교수는 학생들의 창작곡을 통해 전통예술의 다양성과 그로 인한 저변확대의 가능성을 엿봤다. 아직은 다소 서툴고 거친 면도 있는 학생들의 창작물을 과감히 ‘작품’으로 추대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학생들이 만든 곡은 전부 채보(악보로 만드는 것)하게 해요. 마치 통기타 연주곡집처럼 설장구집으로 꾸려보려고요. 그 책이 두꺼워지면 질수록 일반인의 접근성도 높아지겠죠. 특히 젊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곡들이 많아질 거예요. 학생들의 곡은 쉬우면서도 통통 튀고 유쾌하니까요.”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창작음악 음원등록 및 발매실무’ 수업 현장

| 예술교육, 창작의 기준 정립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예종의 선배이기도 한 박인수 교수에겐 요즘 학생들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 빡빡한 커리큘럼 속에서 정작 자신의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졸업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학생들도 심심찮게 마주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조금 빡빡해졌달까요? 제가 학교 다닐 무렵엔 조금 더 열려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제 경우엔 예술적 오지랖도 꽤 부린 편이에요.(웃음) 영상원에서 무대 스텝 알바도 뛰어보고, 연극원에서는 단역 배우도 해봤을 정도죠. 그런 경험들이 모두 예술적 자양분이 됐고요.”

박 교수의 해법은 교육의 ‘여지’다. 학생들이 자신의 것을 채워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예술교육계에서는 일반적인 방식인 ‘도제식 교육’(스승이 제자를 일대일로 가르치는 방식)을 경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박 교수는 “선생님들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것을 짧은 시간에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제식 교육의 장점”이라면서도 “거기에 너무 길들여지면, 기성의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고, 그만큼 자신의 것을 찾기도 힘들다”고 조언했다. 학과 커리큘럼의 밀도가 너무 높다는 것도 학생들의 자유의지를 저해하는 요소다. 빡빡한 커리큘럼을 채우는 건 대부분 전통 예술의 레퍼토리 공연들. 전통의 관습 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박 교수는 “꼭 필요한 것들만 필수 과목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선택하여 경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면서 “학생 스스로 관심사를 찾아 선택해 가는 과정은 자기 예술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인수 교수(오른쪽)는 “예술교육은 예술가들의 자유의지를 북돋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론, 미래 예술교육이 창작의 기준을 수립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전통예술 작품 하나하나를 도제식으로 익히는 대신, 해당 작품이 창작된 논리 혹은 접근 방법에 포커스를 맞춰 학생들 스스로 기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서양음악으로 치면, 모차르트를 연주함과 동시에 화성학 같은 창작접근방법을 이해해야 하는 원리”라며 “음악의 창작접근방법의 이해 없이 모차르트 흉내만 내서는 자신만의 것을 창작하기가 점점 요원해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창작의 기준이 온전히 세워지면, 타 예술 장르 혹은 타 분야와의 융합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자원의 보고인 한예종이기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과제다. 

“융합의 시대잖아요. 예술 역시 그런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고요. 개개인의 창작 기준이나 방법론이 단단하게 잡혀 있으면, 타 장르나 분야를 넘나들기도 훨씬 쉬어질 거예요. BTS의 퍼포먼스를 통해 탈춤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전통예술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하지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 길을 향해 가다보면, 언젠간 분명 ‘자기만의 것’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글  최태욱 기자 

박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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