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주라면…‘카네기홀’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당신의 연주라면…‘카네기홀’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People]은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이하 AC랩)과 함께 한 사람들을 통해 AC랩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예술 교육의 방향성을 소개합니다.   

“영상 쪽에선 가장 진화된 기술로 봐야죠. 헐리우드에서 쓰기 시작한 것도 이제 5년이 채 안 됐을 정도니까요.”

김성욱(44) 네이티브 대표의 말투에 생기가 넘친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놀잇감을 소개하는 아이처럼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에 대해 설명한다. 실제로도 흥미진진한 기술이다. 사방이 대형 LED 벽에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촬영 기법으로, 드라마‧영화‧광고 등의 제작 현장에서 점점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김 대표에게 버추얼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이다. 2D애니메이션부터 컴퓨터 그래픽, 미디어 아트까지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영상 스페셜리스트지만, 이 기술에 흠뻑 매료돼 아예 버추얼 프로덕션 ICVFX 전문 회사까지 차렸을 정도다. 그가 가장 주목한 가치는 확장성. 가장 상업적인 분야부터 순수예술에 이르기까지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예술과의 궁합은 어떨까? 지난해 가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진행된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데모데이’가 바로 본격적인 시험대였다.

김성욱(사진) 네이티브 대표

| ‘보이는 것을 새롭게’…미디어 기술 섭렵한 영상혁신가

김성욱 대표는 ‘비전(vision)’에 특화된 전문가다. 한예종 영상원에서 학‧석사를 모두 마쳤고, 컴퓨터 그래픽, 미디어 아트, TV 광고를 다루는 회사를 차례로 거치며 내공을 축적했다. 포트폴리오의 스펙트럼이 유독 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여수 엑스포나 평창 올림픽 같은 국가 이벤트 전시‧광고 영상에 참여하는가 하면,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차 같은 기업의 광고 작업도 진행했다. 드라마‧영화 역시 손길이 닿는 분야. 그 유명한 ‘기생충’에 참여했던 ‘더엔에스엔컴퍼니’도 그가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튜디오다. 

“재밌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그래서인지 이직도 엄청 잦았죠. 영상 기술이나 기법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니, 저도 한 곳에 오래 못 있겠더라고요.(웃음)”

신기술을 따라 유목하던 생활이 이내 정착한 곳이 바로 버추얼 프로덕션이다. 김 대표는 “가장 좋은 기술이라기 보단 내게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고 평한다. 다양한 필드에서 경험하고 연마했던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지식, CG합성이나 프로젝션 맵핑 기술 등이 모두 녹아있는 분야이기 때문. 초현대적인 기술로서의 희소성도 김 대표의 모험심을 한껏 자극했다.

버추얼 프로덕션을 새로운 업으로 확정할 즈음, 교육자의 길도 활짝 열렸다. 10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왔던 기술적 밑천이 자연스레 안내한 길이다. 대학 강단에 서서 후배들과 경험과 기술을 나눠 온지 벌써 5년 째. 특히 모교인 한예종과의 인연은 깊고도 길다. 강사 활동은 물론,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영상 제작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한예종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 연구사업의 물리 환경 구축도 그의 자문을 거쳤을 정도다.

지난해 교내에 건립된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역시 그의 자문을 거쳐 완성된 공간이다. 김 대표의 전문성이 예술과 기술, 사회의 융합으로 창의적인 실험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아트콜라이더랩의 활동에 오롯이 투영된 것. 체험을 통해 자연스레 동시대 가장 진화된 기술을 접하고, 예술-기술 융합에 대한 관심과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공유한 셈이다. 김 대표는 “버추얼 프로덕션은 아직 업계에서도 정통한 사람이 많지 않은 신기술”이라면서 “가장 선도적인 기술이 가장 선도적인 예술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예종 내 마련된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전경. 김 대표는 “해당 시설을 가진 국내 대학은 대여섯 곳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 당신의 예술, 이젠 오페라하우스‧브로드웨이에서

김 대표가 품은 큰 그림의 시발점이 바로 지난해 아트콜라이더랩이 영상원과 연계해 진행했던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데모데이’다. 다분히 학습보단 체험에 무게중심을 둔 과정. 버추얼 프로덕션을 직접 경험하며, 새로운 방식의 창작 가능성을 일깨우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한예종)영상원에선 이미 지난해 초부터 ‘버추얼 프로덕션’ 수업이 개설됐어요. 이론과 제작 실습을 심도있게 공부하죠. 하지만 타 전공 학생들에게도 이 기술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연극이나 음악, 전통예술 쪽에도 무궁무진한 활용도가 있거든요. 직접 보여주고 소개하며 흥미를 유도하고자 3일짜리 데모데이를 기획한 것입니다.”

사실 버추얼 프로덕션은 문턱이 꽤나 높은 작업이다. 영상 테크놀로지의 최정점에 위치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차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김 대표가 “이번 데모데이의 절대 미션은 학생들에게 ‘이걸로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도의 느낌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버추얼 프로덕션의 묘미는 진짜 같은 가짜다. LED 벽이 만드는 가상의 배경은 촬영기술과 등장인물을 통해 윤색되며 진정성을 자아낸다.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전무한 파격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한예종의 다양한 예술학도들이 세종대왕 즉위식에서 처용무를 추거나, 덴마크의 한 궁전에서 햄릿을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독립영화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프로젝트일수록 활용성은 배가된다. 화면 합성의 형태가 아니라 실제 배경에서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몰입을 방해할 우려도 적다. 김 대표는 “예술가들은 자기 어필을 위한 프로필 영상이나, 공연의 티저(Teaser) 영상 같이 자잘한 표현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표현의 한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굉장한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특별한 체험을 위해 데모데이 현장을 찾은 인원은 총 15명. 자연스레 영상 전공자가 대부분이었지만, 호기심 많은 비전공자도 제법 포함됐다. 참가자들의 면면이 다양한 만큼, 이들의 니즈 역시 제각각. 김 대표는 “차기작을 찍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버추얼 스튜디오 문을 두드린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시종일관 그저 신기해만 하던 학생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스튜디오를 찾은 참가자들의 액션과 리액션은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그 공간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 자체가 성과이기 때문. 애초에 한예종의 젊은 예술학도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무대로 기획된 스튜디오이고, 데모데이는 그 첫 발을 내딛은 과정에 불과하다. 실제로 버추얼 스튜디오는 올해 시범사업 운영이 계획되어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죠. 일단은 ‘아이스브레이킹’에 집중하는 단계에요. 계속 알려주고, 경험해보고 싶게 만들어야죠. 최근 전통예술원의 류경화 교수님께서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공연 홍보 영상을 제작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교수님들이 먼저 경험하시고 그 임팩트를 엿보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요?”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비손’ 연주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류경화 한예종 전통예술원교수

| 예술가는 차별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한예종과 김성욱 대표의 인연은 각별하다. 한예종에서 역량을 키워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고, 그 활약을 통해 얻은 자산을 다시 한예종에 환원하는 선순환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김 대표의 예술적 소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특정 분야에 매몰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탐구정신은 자연스레 차별화로 향했고, 남들과 다르게 표현하려는 의지야 말로 예술가가 지녀야 할 창작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김성욱 대표가 버추얼 프로덕션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개념이 생소하고, 기술적 문턱이 높은 분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와 협업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고, 궁극적으로 무궁무진한 예술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에서다.

“학교 다닐 때부터 타 전공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무용이나 클래식, 전통음악 공연도 참 많이 보러 다녔고, 작가로서 직접 전시를 하기도 했었어요. 그런 경험은 자연스레 타 예술분야와 협업으로도 이어졌죠. 버추얼 프로덕션이라는 하이테크 기술을 접하면서 예술을 떠올린 것도 그래서에요. 광고‧영화‧드라마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활용가치가 높겠다고 봤어요.”

김성욱(왼쪽) 대표는 버추얼 프로덕션의 예술적 활용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영상원에서 버추얼 프로덕션 수업을 도맡고, 아트콜라이더랩를 도와 교내에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하는가 하면, 체험 데모데이까지 진행했던 일련의 행보는 모두 하나의 바람으로 귀결된다. 젊은 예술가들이 동시대적 기술에 대한 위화감을 덜어내고, 이를 통해 거침없이 표현하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다양성과 차별성,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에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단 얘기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대관해서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상상해보세요. 3평짜리 지하연습실에서 하는 것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퍼포먼스를 펼치려 하지 않겠어요?(웃음)”

/  글  최태욱 기자 

김성욱

네이티브 대표

관련 동영상

함께 읽으면 좋을 추천 콘텐츠